설교 요약
나의 분깃 (My Portion)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더 마음을 빼앗길 때가 많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이 더 좋아 보이고,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것을 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수많은 것들보다 금지된 열매에 마음을 빼앗겼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보다 아직 갖지 못한 것에 시선을 두곤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산 증인 (Living God Living Proof)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은 단지 성경 속에 계시거나 하늘에만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어떻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수 있을까요?
과유불급에서 중용의 삶으로 (“Two things I ask of you, LORD”)
지난주 시애틀과 달라스 집회를 다녀오며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여러 모습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애틀에서 만난 노숙인들 가운데는 가난하지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랜 가난과 절망에 익숙해져 소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소망을 잃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생각지도 못한 전적인 은혜 (Totally Grace: Beyond Our Understanding)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기적입니다.
지난 3월, 저는 큰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큰 충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셨고, 저는 몸에 아무런 상처 없이 살아났습니다. 사고 다음 날 에스겔 37장 13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폐차된 차를 보며, 죽음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이제 제 안의 옛 삶에서도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울에서 대면으로 (From Mirror to Face to Face)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목적과 푯대가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러 도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면 도구는 그 역할을 마칩니다. 여행 중에는 지도가 필요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면 지도가 필요 없고, 어두운 길에서는 손전등이 필요하지만 해가 뜨면 손전등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Know Thyself)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자기 성찰과 겸손의 지혜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기 성찰은 단순히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바로 알고, 잘못된 것을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본래 주신 정체성과 사명을 회복하는 것까지 나아갑니다…
가분수 신앙 (Top-Heavy Faith)
가분수는 분자가 분모보다 큰 분수입니다. 위가 아래보다 큽니다. 신앙에도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은 많은데 믿음은 약하고, 말은 큰데 삶은 작으며, 교리는 풍성한데 순종은 부족한 신앙입니다. 머리는 자랐지만 가슴과 발이 따라가지 못하는 가분수 신앙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은 신앙의 성숙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진품인가 짝퉁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Real or Fake? That is the question)
진품과 짝퉁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명품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은 때로 진품보다 명품처럼 보이는 것을 원합니다. “나도 이 정도는 가진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명품을 가지면 명품 인생인가요?
우리의 가치는 무엇을 가졌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친구의 사랑 (The Love of friend)
우리는 좋은 친구를 원합니다. 내가 잘될 때 함께 기뻐하고, 어려울 때 떠나지 않으며, 잘못된 길을 갈 때는 진실한 말을 해주는 사람을 친구라 부릅니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I Am What I Am by the Grace of God)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 나는 어디서 났어?”
어머니가 당황하여 대답하지 못하시자 옆에 계시던 삼촌이 장난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어른에게는 웃고 지나갈 농담이었지만 어린 저에게는 꽤 심각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이지?’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 진짜 엄마는 누구일까?’…
순종을 배우라 (Learn Obedience Through Suffering)
우리는 순종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유를 잃거나 억지로 복종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다릅니다. 히브리어 쉐마(Shema)는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삶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종은 수동적인 굴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드리는 적극적인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해를 넘어 공감의 자리로 (Beyond Understanding, into the Place of Empathy)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 형편을 헤아려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서툴고, 공감하기보다는 판단하는 데 익숙합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함께 울기보다 충고하며, 사람보다 문제를 먼저 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과거에는 노숙인을 보며 "왜 일을 하지 않을까?", "게으르기 때문에 저렇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쉽게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그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가정폭력과 질병, 사고와 중독, 실패와 버림받음,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을 알기 전까지 저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편견만 보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A Man After My Heart)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이 말씀은 다윗이 스스로 자신을 평가한 말도 아니고,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을 향해 하신 평가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Lord, Let the Church Be the True Church)
오늘날 교회가 존중의 대상이 되기보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고, 세상은 교회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비본질적인 모습을 보고 교회 전체를 판단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교회 안에서도 본질과 비본질이 혼동되는 것이다. 교회가 본질을 잃으면 맛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에게 밟히게 된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나 조직이나 제도만도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죄악 가운데 있던 사람들을 불러내어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하신 믿음의 공동체이다. 예수님께서 “내 교회”라고 말씀하셨듯이,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Lord, Make Us This Kind of Church)
하나님은 언제나 큰 숫자보다 남은 자를 찾으셨고, 많은 군중보다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기드온의 군대를 삼만 이천 명에서 삼백 명으로 줄이신 것도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은 병거와 말을 의지합니다. 돈과 권력, 조직과 배경, 사람의 숫자와 능력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시편 20편 7절은 고백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교회는 세상의 힘으로 존재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흔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살아온 흔적, 사랑한 흔적, 상처받은 흔적, 실패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 흔적은 그 사람이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마지막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여기서 “흔적”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나 가축에게 주인의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해 찍던 낙인입니다. 바울이 말한 예수님의 흔적은 단순한 신비적 표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을 위해 살다가 그의 몸과 삶에 새겨진 증거였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종으로 살았다는 표식이었습니다…
너희가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교회 공사 중 새 냉장고와 가스레인지가 설치되고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달렸다외형은 완벽해 보이지만 전기가 연결되지 않으면 냉장고는 냉장고 역할을 할 수 없고, 샹들리에는 빛을 낼 수 없다. 아무리 비싼 전자제품이나 고급 전기차라도 전원과 연결되지 않아 동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천국을 침노하자 (Invade Heaven)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 자동으로 천국에 갈 것이라 생각한다. 세례를 받았으니 안심하고, 직분을 받았으니 보장받았고, 오래 교회에 다녔으니 믿음도 검증되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성화된 죄인 (Sanctified Sinner)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역설(Paradox)이다. 역설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깊은 진리가 담겨 있는 표현이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처럼, 역설은 인간의 고정된 사고를 깨뜨리고 더 깊은 진실로 이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