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라 (God is Love)

본문 말씀: 요한일서 4장 7–12절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인류 역사상 문학, 예술, 대중문화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가 사랑이다.
너무나 많이 들었고 친숙하여 안다고 여기는 단어,
그러나 가장 오해되고 , 왜곡된 단어 사랑에 관해 나누고자 한다.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구하지만
정작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랑이신 하나님에게 배우지 않고 세상에서 배우고 문화 속에서 사랑을 배운다
.
다문화 가정 또는 교포들은 더 복합적이다. 한국정서와 외국 정서가 더해져 복합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목성에서 온 여자
성별간에도 사랑의 정의가 달라서 서로 충돌한다.

그러니 사랑의 정의도 표현도 각각 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어떤 사람은 희생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집착으로 이해하거나, 누군가는 우상으로 이해한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 하고, 사랑은 할것이 아니다, 사랑하면 손해이다, 바보된다, 사랑은 돈으로 증명된다….등등
많은 부정적인 속설들을 믿으면서 도 사랑에 목말라 한다.

사랑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감정이 아니며

진화의 산물도 아니고 사회적 계약도 아니며 문화적 산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것 즉 사랑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의 정의이며 기준이 되는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난 자이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고 성경은 명확하게 선언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온전한 이타 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인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살펴 분별해야 한다.

내 만족의 사랑이 사랑이라고 할수 있을까
교회를 오래 다녀도 선교 전도 봉사 열심히 해도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헌신이라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 모든것들 보다 사랑하는가 가 본질적인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인간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의 차이가 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이다.
잘하면 사랑하고

순종하면 사랑하고

기대에 맞으면 사랑하고

나에게 유익하면 사랑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인간 사랑은 언제든지 변합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실망하고 미워하고 단절한다.
부부도 부모자식도 내 말 듣지않으면 실망하고 미워하고 단절한다. 형제도 친구도 자신의 기대가 무너지면 사랑도 무너진다.
심지어 결혼하고 권태기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상한 사랑이다.

사랑은 영원하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액션이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헌신과 희생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것은 우리가 무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조금도 없다.
우리는 패역한 죄인이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거부하며, 배은망덕하며, 대적하는 원수였다. 
이런 원수를 사랑하시고, 이런 원수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고 자신을 내어주신 것이 사랑의 액션이다.
우리는 결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이 다르고 사랑을 모르는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면 세상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원수인 나를 대속해주신 사랑을 깨달은 그리스도인은 원수 사랑을 이해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타 사랑은
사랑하는 자를 살리고 세우고 잘되기를 바래서 내어주는 대속적 사랑이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런 사랑을 한 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있다. 
우리 나라에도 손양원 목사님의 사건을 알고 있다. 
두 아들이 공산당 청년에 의해 살해 당했다.
복수가 당연하고 저주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요구해야 하는데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그 청년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입양하여 사랑으로 품었다. 

세상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니 그러한 사랑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인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손양원 목사님은 바로 이 사랑을 받아 실천하신것이다.

우리가 구원 받은 이유는 교회를 나오고 헌금을 많이 내고 봉사하고 하나님을 믿어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때문이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기에 사랑은 위대하다. 
이 위대한 사랑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 풍파에 시달리면서 녹녹치 않는 신앙생활 가운데 낙망하여 포기하고 싶고 숨도 쉴수 없을 만큼 힘들때라도 다시 일어설 소망을 만들어 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로마서 8장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 무엇도 ….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착오로 빚어진 비극이다.
진정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겠는가.
사랑은 당신이 없으면 난 못산다가 아니라
당신을 슬프게 하지 않겠다는 이타이다.
사랑은 모든것을 참으며 모든것을 믿으며 모든것을 바라며 모든것을 견디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이와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 이다. 

너가 사랑하니 나도 사랑한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으면 자연히 나타나는 열매이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수 없다고 한다.
사랑은 감출수 없는 나타남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할때 비로소 세상은 하나님을 보게 될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언젠가 주님앞에 설때에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내 계명을 지켰느냐
얼마나 사랑하고 왔느냐 일것 같다.

조건을 내려놓는 사랑, 먼저 손내미는 사랑, 희생 손해를 기꺼이 하는 사랑, 원수까지 품는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교회에서 나타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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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에서 사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