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회인가?

본문 말씀: 마태복음 6장 10절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팬데믹 이후 우리는 교회를 다시 생각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온라인 예배가 일상이 되고, 헌금과 봉사도 클릭으로 이루어지며, 물리적 공동체의 의미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교회 건물은 문을 닫고, 성도들의 모임은 흩어지고, 신앙은 점점 개인화되고 있다. 한 시간 화면 앞에 머무는 것으로 신앙의 의무를 다한 듯 여기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왜 교회인가? 왜 굳이 교회여야 하는가?

많은 이들이 교회를 건물로 이해한다. 혹은 종교 활동을 하는 기관,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생각한다. 신앙이 자라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또 전도와 선교를 교회의 사명이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교회의 본질은 활동 이전에 존재 이유에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선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 주님의 사역 전체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선포하고, 치유하며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주님 승천 이후 성령이 임했고, 교회는 사도행전을 통해 역사 속에 등장했다.

즉 교회는 인간이 만든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사역을 이어받은 공동체로 시작되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 헬라어 에클레시아(Ekklesia) 는 “밖으로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의 공동체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한 종교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는 삶의 현장이다.

교회의 시작인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삶으로 복음을 드러냈고,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다. 교회는 그렇게 존재로 증명되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것이다.

예배, 교육, 선교, 봉사, 교제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교회는 하나님 통치가 실제로 나타나는 전초기지다.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본다.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분열된 곳에 화목을, 절망 가운데 소망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교회다.

이 본질은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없다. 임재와 삶의 나눔, 눈물과 회복, 치유와 교제는 화면 너머에서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공동체”(행 20:28)라 말한다. 또 “그리스도의 몸”(엡 1:22-23)이라 한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생명 유기체다. 머리는 그리스도요, 성도는 지체다.

그러므로 교회가 인간 중심이 될 때 기능은 남아도 생명은 사라진다.

주님은 교회를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다(마 21:13). 기도가 사라지면 프로그램이 채우고, 성령의 통치 대신 인간의 운영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때 교회는 존재는 있으나 본질은 잃어버린다.

초대교회가 능력을 가졌던 이유는 단순했다.
사도의 가르침, 교제, 떡을 뗌, 그리고 기도에 힘썼기 때문이다(행 2:42-47). 그 결과는 교인 수 증가가 아니라 구원받는 자의 증가였다.

주기도문의 이 한 구절은 교회의 존재 목적을 가장 분명히 보여준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이루어지이다.”

교회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말씀이 선포될 때 통치가 임하고, 성령이 역사할 때 나라가 드러난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만이 아니라, 지금 임하는 통치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나타나는 삶의 영역이다(롬 14:17).

결국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왜 교회인가?

교회는 편안함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자존감을 위한 소속도 아니다.
종교 활동을 위한 플랫폼도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보이도록 존재한다.
말하는 곳이 아니라 나타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다닌다”가 아니라
**“교회로 살아간다”**고 말해야 한다.

한 사람의 참된 예배,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
한 사람의 애통하는 눈물을 통해
하나님은 교회를 살리신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우리가 교회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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