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사랑 (The Love of friend)
본문 말씀: 요한복음 15장 12-15절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우리는 좋은 친구를 원합니다. 내가 잘될 때 함께 기뻐하고, 어려울 때 떠나지 않으며, 잘못된 길을 갈 때는 진실한 말을 해주는 사람을 친구라 부릅니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다몬과 피시아스, 동양의 관중과 포숙아, 성경의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보다 친구를 귀하게 여기고, 손해와 희생까지 감수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친구의 사랑은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최근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이 말씀을 실제 삶으로 보여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 죽마고우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내어주는 결정을 했습니다. 장기를 내어준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일부를 주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건강과 미래에 대한 위험까지 감수하는 사랑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영웅적인 희생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 공동체 안에서 경험한 사랑을 다시 흘려보낸 것이었습니다. “내 가족은 공동체입니다”라는 고백처럼, 복음 안에서 맺어진 관계가 실제적인 사랑의 열매로 나타난 것입니다.
사랑은 계산을 넘어섭니다.
이기적인 마음은 언제나 “내게 무엇이 유익한가”를 먼저 묻지만 사랑은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정의도 자기 의가 될 수 있고, 봉사도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세상에는 사람은 많지만 외로운 사람이 많습니다. 소통의 수단은 넘치지만 마음을 나눌 사람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불법이 성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사랑이 식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관계가 메말라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처럼 사랑이 사라지는 자리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함께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장기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신장은 줄 수 없어도 시간을 줄 수 있습니다.
내 이익을 조금 포기할 수 있습니다.
자존심과 고집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비판과 판단 대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움을 버리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사랑들이 가정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결국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였던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며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우리는 원수에서 친구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은 받은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도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가 단순히 친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의 친구들이 모여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사랑하고,
세상이 이상하게 바라볼 만큼 섬기며,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지?”라고 물을 때 이렇게 대답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사랑.
그것이 예수님의 친구로 부름받은 우리가 살아내야 할 친구의 사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