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I Am What I Am by the Grace of God)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5장 9-11절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 나는 어디서 났어?”

어머니가 당황하여 대답하지 못하시자 옆에 계시던 삼촌이 장난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어른에게는 웃고 지나갈 농담이었지만 어린 저에게는 꽤 심각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이지?’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 진짜 엄마는 누구일까?’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제 안에 하나의 질문이 씨앗처럼 심어진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말씀에서 발견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주어를 자꾸 ‘나’로 씁니다.

내가 공부했고, 내가 일했고, 내가 견뎠고, 내가 가정을 지켰고, 내가 사업을 일으켰고,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회를 선택했고, 내가 봉사했고, 내가 헌금했고, 내가 수고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깊어질수록 인생의 문장이 달라집니다.

“내가 여기까지 왔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셨다.”

바울의 인생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습니까?

박해자가 전도자가 되었고, 교회를 무너뜨리던 사람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었으며,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던 사람이 그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에게는 그것을 설명할 말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저 역시 제가 목사가 되고 교회를 섬기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길 위에 하나님의 손이 있었고, 내가 결정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뒤에 나보다 먼저 일하고 계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치고 싶은데 마음에 계속 남게 하셨고, 포기하고 싶은데 포기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데 기도하고 나면 다시 품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내가 사는 인생’에서
‘은혜 입은 내가 사는 인생’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러나 은혜는 우리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그리고 곧이어 말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내가 했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걸었지만 걷게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내가 버텼지만 붙드신 손이 있었습니다.
내가 일했지만 일할 힘과 기회를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내가 섬겼지만 섬길 마음을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아는 사람은 교만할 수도 없고 게으를 수도 없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내가 했다”고 자랑하지만, 은혜를 오해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겠지”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누구보다 열심히 수고하면서도 그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은혜는 우리의 과거를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바울은 과거에 매여 살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은혜가 그를 다시 세웠습니다. 모세는 사람을 죽이고 도망한 사람이었지만 은혜가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우리에게도 실패와 상처, 후회와 잘못된 선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마저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상처받았기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을 알아보게 하시고, 내가 실패했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게 하시며, 내가 외로웠기 때문에 외로운 사람 곁에 앉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느 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고백하게 됩니다.

“그때도 은혜였군요.”

은혜는 좋은 일이 생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없애 주시는 대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은혜는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상처도, 실패도, 눈물도, 먼 길을 돌아온 시간도 하나님께 드려지면 누군가를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셨다면 이제 나도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면 이제 나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일으키셨다면 이제 무너진 사람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품으셨다면 이제 품기 어려운 사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음을 들려주셨다면 이제 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은혜는 특권으로 끝나지 않고 사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보내실지 모릅니다.

상처받은 사람, 실패한 사람, 길을 잃은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고집스러운 사람, 이해하기 힘든 사람,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들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습 속에 어쩌면 우리의 옛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고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저랬는데….
나도 몰랐는데….
나도 넘어졌는데….
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지금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데….”

이것이 은혜를 받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보다 의로워서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받았고, 은혜로 여기까지 왔으며, 이제는 그 은혜를 흘려보내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더 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를 누구에게 흘려보낼 것인가?”

“누가 나를 도와줄 것인가?”가 아니라
“이제 나는 누구의 손을 잡아 줄 것인가?”

“누가 나를 이해해 줄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를 이해하고 품어 줄 것인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해 주실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누구를 살리기 원하시는가?”

이것이 은혜 받은 사람의 사명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은혜를 누리는 곳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가지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가고, 길을 잃은 사람을 찾아가며,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고,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은혜 받은 교회는 은혜가 필요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오늘도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은혜를 전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고백이 단지 지나온 인생에 대한 감사의 고백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를 살리신 은혜로 사람을 살리고,
나를 품으신 은혜로 사람을 품으며,
나를 회복시키신 은혜로 무너진 사람을 일으키고,
나에게 맡기신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사명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의 생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제게 주신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았습니다.
받은 은혜로 한 사람이라도 더 사랑했고, 한 영혼이라도 더 품었으며, 주님이 보내신 사람들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이겠습니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나의 남은 삶은 그 은혜에 대한 응답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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