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넘어 공감의 자리로 (Beyond Understanding, into the Place of Empathy)

본문 말씀: 베드로전서 3장 8-12절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 형편을 헤아려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서툴고, 공감하기보다는 판단하는 데 익숙합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함께 울기보다 충고하며, 사람보다 문제를 먼저 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과거에는 노숙인을 보며 "왜 일을 하지 않을까?", "게으르기 때문에 저렇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쉽게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그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가정폭력과 질병, 사고와 중독, 실패와 버림받음,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을 알기 전까지 저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편견만 보고 있었습니다.

공감은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감은 판단하기 전에 아픔을 보고, 말하기 전에 이야기를 들으며, 가르치기 전에 그 곁에 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죄를 정확히 구분할 줄은 알았지만 죄인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먼저 그녀를 보호하셨습니다. 죄는 분명히 하셨지만 죄인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죄인을 제거해야 할 문제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구원해야 할 영혼으로 보셨습니다.

베드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

이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을 가진 사람의 삶의 방식입니다.

공감은 단순한 동의가 아닙니다. 상대의 생각에 모두 찬성하지 않아도 그의 상처와 두려움을 이해하려는 마음입니다. 자녀의 선택에는 동의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 두려움에는 공감할 수 있고, 죄인의 행동은 옳지 않지만 그가 무너진 이유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고, 내려오셔서 구원하셨습니다(출 3:7-8). 예수님은 더 나아가 우리의 연약함 속으로 직접 들어오셨습니다. 배고픔과 외로움, 배신과 고난을 몸소 경험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공감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함께 우셨고,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으며, 겟세마네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셨습니다. 해결책을 알고 계셨지만 먼저 함께 울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세상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정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찾아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노숙인과 중독자, 깨어진 가정과 외로운 청년들이 복음 안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묻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함께 있어 줄 수는 있습니다.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치료자이신 예수님께 인도할 수는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같이하라. 동정하라. 형제를 사랑하라. 불쌍히 여기라. 겸손하라."

이해를 넘어 공감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판단하기 전에 기도하고, 가르치기 전에 손을 잡으며,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합시다.

죄인과 세리의 식탁에서, 소외된 노숙인의 텐트에서, 눈물 흘리는 영혼 곁에서 예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곳에서 상처 입은 영혼이 살아나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며, 교회가 세상을 치유 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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