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A Man After My Heart)

본문 말씀: 사도행전 13장 21-23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이 말씀은 다윗이 스스로 자신을 평가한 말도 아니고,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을 향해 하신 평가입니다.

영어 성경은 이 말씀을 “A man after God’s own heart”라고 번역합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하나님의 방향에 자신의 삶을 맞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윗을 생각하면 용기와 믿음, 찬양과 승리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신 다윗의 핵심은 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진 마음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다윗이 부러웠습니다. 하나님께 그런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욥처럼 하나님께 인정받고, 바울처럼 사명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놓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닫게 된 것은, 열심만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라디오는 주파수가 맞아야 방송이 들립니다. 아무리 좋은 방송도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잡음뿐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성공, 인정, 비교, 자존심, 두려움의 주파수에 맞추어져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자기 마음의 소리만 듣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하나님의 일을 아는 이가 없다”고 말합니다(고린도전서 2장). 하나님의 마음은 지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을 붙들었습니다. 사울은 체면을 지키려 했고, 다윗은 죄를 책망받을 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너질 줄 알고, 죄를 합리화하지 않으며,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자신을 비우고, 낮아지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의 주파수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낮아지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증명하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맡기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소유하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나누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미워할 이유를 찾지만 주님은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계속 조율하실 때 우리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되고, 사람을 볼 때 판단보다 긍휼을 품게 되며, 상처 속에서도 용서를 배우고, 자신의 성공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3장은 다윗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살기를 원했던 왕이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나타내신 왕이십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결국 다윗 자신이 아니라 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재능보다 마음을 찾으십니다. 말보다 순종을 보시고, 형식보다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주파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질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그의 뜻을 이루셨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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