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된 죄인 (Sanctified Sinner)

본문 말씀: 로마서 6장 6-23절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역설(Paradox)이다. 역설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깊은 진리가 담겨 있는 표현이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처럼, 역설은 인간의 고정된 사고를 깨뜨리고 더 깊은 진실로 이끈다.

성경은 이러한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공동체에는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 하신다. 십자가는 패배처럼 보였지만 인류 구원의 승리였고, 죽음처럼 보였지만 생명의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위대한 역설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의 진리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도를 “성화된 죄인(Sanctified Sinner)“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동시에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라는 뜻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았지만 아직 완전한 거룩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미 구원받았지만 아직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 못한 존재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언한다. 죄의 종이었던 옛 자아는 이미 죽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죄의 유혹과 싸운다. 그래서 성도는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와 싸우는 사람이다. 죄를 사랑하던 사람이 죄를 미워하게 되고, 죄를 즐기던 사람이 죄를 슬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화의 시작이다.

오늘날 교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은혜를 값싼 면허증으로 사용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짜로 받았지만 결코 값싼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주어진 은혜이다. 진정한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더욱 아파하며 거룩함을 사모한다.

성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평생에 걸친 여정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를 버리지 않으신다. 마치 금이 간 도자기를 금으로 수선하여 더욱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는 장인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와 실패를 은혜의 흔적으로 바꾸신다. 다윗도 넘어졌고, 베드로도 실패했으며, 바울도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성도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포기된 사람도 아니다.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며, 죄와 싸우며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이것이 성화된 죄인의 모습이다.

기독교 신학은 이를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긴장 속에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아직 영화로운 몸을 입지 않았다.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았지만 아직 완전한 성화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는 반드시 완성될 것이다.

로마서 6장의 결론은 분명하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성화의 마지막 열매는 영생이며, 그 영생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기에 겸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담대하다. 넘어졌다고 절망하지 않고, 아직 부족하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은혜 아래 거하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 바로 그가 성화된 죄인이다.

우리는 완전한 성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죄에 머무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 성화된 죄인이다. 이것이 복음이 주는 역설이며, 동시에 성도의 소망이다.

Previous
Previous

천국을 침노하자 (Invade Heaven) 

Next
Next

만남 (Blessed Encou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