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설교 요약
[ 원리원칙 ]
갈라디아서 6:7–8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우리는 이 말이 자연계에서는 진리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영적 세계에서는 쉽게 잊어버린다. 성경은 이 단순한 속담을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새겨진 불변의 원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원리를 자기중심적 신앙과 동양적 인과응보로 오해하며 살아간다는 데 있다.
성경은 먼저 경고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인생에서 가장 잘 속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문제의 원인을 항상 밖에서 찾으며 환경, 사람, 심지어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지만, 성경은 고통의 뿌리가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육체를 위해 심고서 영적 열매를 기대하는 모순이 바로 ‘자기 기만’이다.
하나님을 업신여긴다는 것은 단순히 불경한 행동을 말하지 않는다.
기도를 명령문처럼 하고,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태도—모두 하나님을 ‘농락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속이면 결국 피해자는 나 자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해야 천국 간다” “복 받으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동양적 인과응보다.
성경은 말한다.
선행은 천국 가는 조건이 아니라, 천국 백성의 결과이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 성령으로 태어난 자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의 열매다.
그렇다면 무엇이 ‘육체를 위한 씨’이며 무엇이 ‘성령의 씨’인가?
갈라디아서 5장은 육체의 일—음행, 분쟁, 시기, 분냄, 분열, 방탕 등—을 분명히 드러낸다. 반대로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 성경은 단호하게 말한다.
“심는 대로 거둔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며, 창세기 8장 말씀처럼 세상 끝까지 지속될 창조 질서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 때문에 다시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대신 ‘심고 거두는 법칙’으로 인류가 스스로 배우게 하셨다. 즉, 이 원리원칙은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인류에게 주신 지혜이며 자비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무엇을 심으며 살고 있는가?”
내 정체성과 내가 맺는 열매는 일치하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
매일의 말, 선택, 행동, 관계… 이것들은 모두 씨앗이다. 성도는 기적이 아니라 원리에 따라 산다. 거듭난 자는 성령의 씨를 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부르심 받았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종교’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리의 원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길이다.
[ 틀림없는 말씀, 변하지 않는 진리 ]
누가복음 17:17 —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어느 목욕탕에서 아버지가 “아~ 시원하다!”고 말하자 아들이 뛰어들었다가 “앗 뜨거!”를 외치며 “세상에 믿을 놈 없다!”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웃는 이유는, 삶 속에서 “말이 사실과 다를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말도, 기준도, 가치도 계속 변합니다. 명왕성의 지위가 바뀌듯, 과학·도덕·문화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집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묻습니다.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가?”
“변하지 않는 진리가 존재하는가?”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딤후 3:16)이라 선포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의견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완전하시므로 말씀도 완전하고, 하나님이 불변하시므로 말씀도 불변합니다. 말씀의 무오성(inerrancy)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믿음 전체의 기초입니다.
그 기초가 흔들리면
• 구원의 확신도 흔들리고
• 교리도 무너지고
• 신앙의 본질도 사라집니다.
오늘 시대는 ‘절대 진리의 붕괴 시대’입니다.
종교는 취향이 되고, 도덕은 선택이 되고, 성경마저 재해석의 대상으로 취급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참고서’가 되는 순간, 교회는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됩니다.
반대로 성경은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히 4:12).
말씀은
• 죄인을 돌이키고
• 상한 마음을 치유하며
• 길을 잃은 자에게 방향을 주고
• 절망한 영혼에 소망을 줍니다.
말씀은 지금도 변함없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결단해야 합니다.
첫째, 말씀을 진리로 붙잡을 것.
둘째, 말씀을 최종 권위로 삼을 것.
셋째, 말씀 위에 삶과 가정을 세울 것.
세상은 변해도, 사람은 흔들려도,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그 말씀 위에 집을 지을 때, 어떤 비바람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말씀 앞에 서고, 말씀을 경외하며, 말씀의 권위를 세울 때 하나님은 그 교회를 흔들림 없는 반석 위에 세우실 것입니다.
[ 감사를 찾으라 ]
누가복음 17장 12-19절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매년 같은 설교를 듣습니다.
감사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입니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감사는 순종의 태도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의 열 명의 나병환자 중 단 한 사람만 예수께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은혜를 잊고 교만에 빠집니다. 감사의 반대는 불평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감사는 영적인 문입니다.
감사를 열면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불평을 열면 사탄이 들어옵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치유 기적도 불행의 시작이 될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절반이 굶어 죽는 가운데서도 신앙의 자유를 감사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감사는 행동이기 전에 정체성입니다.
그리고 삶을 바꾸는 역전의 키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영광이 어디 있느냐
그 감사는 어디 있느냐
감사를 잃어버렸다면 다시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면 돌아와 엎드리십시오.
오늘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께서 거두시는 참된 추수의 열매가 되기를 바랍니다.